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서 코난 도일 (문단 편집) = 역사 속 도일 = * 코난 도일은 1900년 4월 2일(당시 42세) [[보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블룸폰테인]]에 도착해 7월 6일까지 체류했는데, 블룸폰테인의 유명인사로 [[J. R. R. 톨킨]]이 있다. 부친인 아서 톨킨이 블룸폰테인 은행장으로 임명 받은 후 그곳에서 톨킨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아서 톨킨은 1897년 사망했고, 그 당시 J.R.R. 톨킨은 어머니와 함께 영국에 잠시 귀국해있었다가 부친을 잃은 뒤 어머니의 고향인 우스터셔로 갔기 때문에, 톨킨 가족과 코난 도일이 만났을 가능성은 없다. * 1902년 10월 24일 [[버킹엄 궁전]]에서 [[에드워드 7세]]에 의해 [[기사 작위]]를 받게 된 코난 도일은 강한 불만감을 드러냈다. 서임식 때 입어야 할 예복이 비쌀 뿐 아니라 "금실 견장과 뿔 달린 모자까지 있어 너무 복잡하다"고 불평한 것이다. 게다가 서임식 자체의 위엄도 전혀 없다며 불평했다.[* 낮은 등급의 훈장이야 그런 점도 있지만, 기사 작위는 지금까지도 남발되거나 하는 수준의 것은 아니다. 문학뿐 아니라 스포츠, 대중음악, 학계, 공직자,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전분야' 대상으로 1년에 2번씩 있는 서훈명단 발표에서, '영국 연방' 소속 국민 중 20명 내외만이 기사 작위 이상에 오른다. 영국 연방 소속국은 굵직하게만 대도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 1899년 10월 23일 [[뉴욕(주)|뉴욕주]] 북부 [[버펄로]]의 스타 극장에서 처음 상영한 연극 <셜록 홈즈>는 [[미국]]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영국]]에는 1902년 1월 30일, 63년 동안 재위하다가 사망한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장례를 마치고 왕위를 계승한 [[에드워드 7세]]와 [[알렉산드라]] 왕비 앞에서 어전 공연으로 초연되었는데, 에드워드 7세는 홈지언이라 불릴 정도의 [[오타쿠]]였다.[* [[셜록 홈즈 시리즈]]가 국왕이 끝까지 읽은 유일한 소설이란 소문이 있을 정도.] 에드워드 7세는 연극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셜록 홈즈]] 역의 윌리엄 길레트를 귀빈석으로 초대해 그와 너무 오래도록 사담을 나누는 덕에 관객들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짜증을 내기까지 하였다. 공연이 끝나자 길레트와 코난 도일이 관객 앞으로 나와서 쏟아지는 기립 박수를 받았다. 이 [[연극]]의 초연이 연극사에 기록된 이유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1903년에 갓 열네 살이 된 찰스 스펜서 채플린이 급사 역할을 맡아서 연기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찰리 채플린]]의 첫번째 무대 연기'''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Dorando_Pietri_1908.jpg]] (가운데가 피에트리 도란도, 왼쪽에 도란도를 부축하고 있는 인물이 코난 도일로 오해되어 많은 비난을 받았다.) * [[1908년]] [[1908 런던 올림픽|런던]] [[올림픽]]에서 코난 도일은 [[마라톤]] 심판위원을 맡았다. 이 경기는 종래 40km 코스로 진행되던 마라톤이 출발점이 윈저 궁으로 바뀌면서 전체적으로 2.195km 늘어나 42.195km로 진행한 최초의 대회이기도 했는데, 이 때문인지 선두로 달리던 [[이탈리아]]의 피에트리 도란도(1885~1942)가 스타디움에 들어오자 완전히 탈진해 쓰러져버렸다.(쓰러지기 직전 400m를 무려 '''10분'''에 걸쳐서 뛸 정도였다.) 그러나 코난 도일을 비롯한 심판진들이 몰려나와 도란도를 부축해 결승선에 도착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인도적인 감정에서 저지른 일이었다고 강변했으나 실은 2위로 추격하던 선수가 [[미국]]의 존 헤이즈[* 1886~1965. 그는 대장간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릴 적부터 대장간 일을 도와서 더위에 익숙했기에 아무렇지 않게 결승선을 통과했다.]였기 때문에 '''[[양키]]가 우승하는게 거슬려서 그랬다'''는게 중론. 당연한 얘기지만 도란도는 실격당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76&aid=0000003056&|#]] 도란도는 울먹이며 왜 나를 실격하게 했냐고 분노했다. 사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실제 도란도를 부축한 사람은 코난 도일이 아니라 코난 도일과 비슷하게 생긴 다른 심판이었고 코난 도일은 도란도를 부축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신문기사에 나온 사진을 보고 코난 도일을 크게 비난했다고 한다. 코난 도일은 비록 자신이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심판진의 한 사람으로서 도란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비난을 받아드리고 도란도를 위한 모금 행사를 주도하기도 했으며, 본국인 [[영국]]에서도 미안해서인지 [[영국]] 왕인 [[에드워드 7세]]는 특별 황금컵을 수여했으며 미국 작곡가 어빙 벌린(1888~1989)은 도란도야말로 승리자라며 도란도라는 음악을 작곡하여 바치기도 했다. 그리고 1909년에 [[미국]]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나간 도란도는 헤이즈를 24초 차이로 제치고 우승하며 설욕했다. * 1911년에 코난 도일은 [[독일]], [[영국]] 등을 횡단하는 자동차 경주에 참가했으며 첫 [[비행]]에도 성공했다. 이후에도 도일은 [[스트랜드 매거진]]을 비롯한 다양한 잡지에 [[셜록 홈즈 시리즈]] 연재를 지속하면서 1915년에 마지막 장편인 [[공포의 계곡]]을 발표하고 1917년에 네 번째 단편 모음집인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를 발표하면서 변함없는 인기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1918년에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첫째 아들 킹슬리가 사망하면서 커다란 충격에 빠지게 된다. 아들의 사망은 도일이 심령론에 빠져들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심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도일은 심령론의 신뢰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수많은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진행하고, 다양한 [[영국]] [[언론]]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인터뷰]]를 자청했다. 비슷한 시기에 집필되어 1927년에 출간된 시리즈의 마지막 단편 모음집인 [[셜록 홈즈의 사건집]]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오컬트]]적인 소재도 상당히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정말로 사건의 진상이 무슨 초자연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다거나 하지는 않고, 단지 분위기 조성용 장치 혹은 추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할 뻔했던 함정 정도로만 나온다. '흡혈귀라는 오해를 받았으나 사실 독화살을 맞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입으로 피를 빨아냈을 뿐인 부인', '피와 불에 탄 뼈 등이 발견되어 살인의 흔적으로 여겨졌으나 사실은 요리사가 개인적으로 부두교를 신봉하여 혼자서 의식을 치렀던 흔적' 등.]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